#1.
고등학교는 전쟁터였다. 위태로이 달려있는 명문이란 간판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는 차라리 콜로세움의 검투사였다. 자습실의 좌석 배치는 모의고사 성적대로 달마다 바뀌었다. 다섯 명에게만 주어지는 듀오백 의자를 차지하려면, 모두가 적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어야 했고 조금의 틈도 내비치면 안 됐다. 그러므로, 필마단기의 조자룡은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쑤셔 박고 속으로만 노래를 불렀다.
고독이라는 피가 묻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뱁새눈깔이었다. 고름이 맺히도록 앉아있었을 뿐인데, 난 걸어 다니는 그들의 나태이자 동물원의 천재 원숭이가 되었다. 그렇게, 트로피는 마를 겨를이 없었다.

#2.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만난 구절이 오랜 모토로 남아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올 때면 항상 ‘품었던 인류애를 아직 지켜낸 이‘라고 답한다. 지겹도록 사람에게 데이고 세상에 차였다. 그 와중에 사랑을 간직하는 일은 퍽 고됐으므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는 수월하기를 바랐다.
음악 안에서는 누구와 다투지 않아도 됐고,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사람들과 이 황홀을 나누고 싶었다. 주저 없이, 힘겹게 들어간 대학교를 벗어나 음악을 선택했다. 청승맞은 사정으로 악기를 못 잡게 되었지만, 그저 방법만 달라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즈음, 개발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방법은 찾았는데, 항로가 막막했다. 망망대해에서, 꿈을 담은 조각배는 홀로 부유했다.

#3.
우아한테크코스의 막이 올랐고, 나는 이방인이었다. 처음 들어본 단어들로 소통하는 세상 속에서, 매일이 당황으로 채워졌다.

#4.
열 살 무렵, 헬스장 텀블러 같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로봇 레고를 매일 동생과 가지고 놀았다. 이 로봇들은 무시무시한 호환성을 자랑해서, 어느 부위에든 팔, 다리 등이 달라붙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항상 동생이 만든 로봇은 별로 멋있지 않았으므로, 못난 형은 홀로 동생의 로봇을 입맛대로 고쳐댔다. 그럼에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페어프로그래밍을 앞두고 우려했다. 혼자서 로봇을 다시 고칠 것이 분명했다. 생각한 로봇의 모양을 쭉 설명하며 로봇 다리를 팔 구멍에 꽂으려는 내게, 페어는 그건 다리라고 알려줬다. 이런 과정을 사흘 반복했고, 나는 이십 년 만에 원하던 모양의 로봇을 만났다.

#5.
모르는 것을 묻는 건 여전히 내게 불가능이었다. 페어가 아는 말로 모르는 세상을 말하거나, 모르는 말로 아는 세상을 설명할 때는 체면을 차리는 데 급급했다. 모르는 말로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물었다.
돌아올 멸시가 두려웠는데, 페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저 답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슬랙에 알림이 울렸다. 아까 물어본 내용에 대한 블로그 글이 도착해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검투사가 아니었다.

#6.
조각배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거나, 돛이 컸었나 싶다. 연봉 오륙천의 태풍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휩쓸리고 방향을 잃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당최 노를 저을 맛이 안 났다. 네오와 얘기를 나눴고,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라는 답을 받았다. 스스로의 기준이라는 나침반을 가져보라 했다.

#7.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을까. 매일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무얼 위해 공부를 하고 있을까. 너른 집을 놔두고, 세 평 남짓한 달방에서 왜 쭈그려 새우잠을 청할까. 가족, 강아지, 친구가 아른거려도 왜 그리워만 하고 있을까.

#8.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기를 바란다. 각자가 안전하게 자아를 실현해서, 다양한 웃음과 노래가 흘러넘쳤으면 한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이러한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다.

#9.
밤 열한 시의 귀갓길은 항상 오백오십오미터의 롯데타워가 배웅을 해준다. 방에서 볼 때는 꽤나 만만한데, 루터회관 앞에서는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겠다. 캠퍼스에서는 꿈도 타워처럼 크고 엎어지면 닿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매일같이 출근을 한다.
타워 바로 앞 잠실역 입구에는 로또 1등이 십 수 차례나 나온 소위 ‘명당’이 있다. 그 앞으로 길게 늘어선 인생의 무게들을 마주할 때면 금세 또다시 태풍이 인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꿈을 좇는 건가 싶다. 나침반이 또 요동치면, 다시, 눈을 꼭 감고 속으로 되뇐다.
작아진 건 방 크기로 충분하고, 줄어든 건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으로 족하다.

#10.
나는 우아한테크코스를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우아한테크코스가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꿈을 위해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함께 우아한테크코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결국 이뤄낼 내 꿈을 믿는다.

요즘, 참 오랜만에 콧노래를 흥얼거린다.